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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7-02 21:06
춘천 280랠리 후기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1박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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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짱가3
 조회 : 5,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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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280랠리 후기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1박 2일)
참가자(닉네임) : 베라크루즈(이하 베라), 다이똔꽈(이하 똔꽈), 리카, 짱가(나)
지원조(닉네임) : 곰팅바이크(이하 곰팅), 헤라, 깊은밤
‘280랠리(이하280)’ 는 2년 전 동호회 회원이신 ‘베라님’이 ‘평창 280’에 참가하면서 알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전혀 관심조차도 없었다. 아니 사람이 미치지 않고 서야 제정신으로 산악 280km를 36시간 내에 어떻게 완주할 생각을 하겠는가.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를 10회 정도 완주한 나로서도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베라님’께서 대회 4주 전, 5월 마지막 일요일에 ‘280코스’ 후반부 답사에 관련된 공지를 동호회 카페에 올리면서 알게 되었다. ‘화악산임도, 북배산, 당림리 임도’ 등은 나의 고향인 춘천시 서면 뒷산이 아닌가. 답사만이라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신청을 하게 되었다.
‘베라님’을 비롯한 5명은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12시간 동안(식사시간 포함) 80km 산악 구간을 열심히 달렸다. 2주 뒤 6월 둘째 주 일요일, 전반부 2차 답사 또한 함께 했다. ‘대룡산 임도’ 및 싱글, ‘가리산 임도’ 80km를 12시간 동안 열심히 달렸다. 1.2차 답사가 모두 너무나 힘들었다. 그래서 ‘역시 280랠리는 무모한 도전이 아닐까?’하고 위축되어 갈등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 고향 춘천에서 개최하는 산악자전거 축제에 대한 기대와 설렘, 그리고 타지에서 더 뚜렷해지는 애향시민정신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단 참가 신청을 했다. 중간에 힘든 코스는 건너뛰고, 전국에서 모인 베테랑 산악라이더들과 함께 하면서 내 고향 춘천에서 축제를 맘껏 즐기기로 마음을 정하였다. 그리고 이번 ‘280랠리’에 참가에 대한 의미를 ‘베라님’에게 전달하였다. 베라님은 ‘이미 당신이 속한 동호회에서 지원조가 편성되었으니, 함께 하자’고 했다. 그리고 나의 참가를 기뻐해주시며 응원해주셨다. 우리 동호회도 아니고 또 누군가의 신세를 지기 싫어서 잠시 망설였지만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280 코스’가 최종 확정된 후 인터넷에 접속(다음, 네이버, 야후 등)하여 매일 지도를 검색하면서 코스를 확인하고 익혔다. 그리고 ‘280랠리’ 관련 내용(준비물, 후기, 코스 등)은 모두 검색하여 숙지했다. 그러나 ‘나의 체력과 정신력 그리고 라이딩 능력으로 완주는 불가능 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가리산임도, 강촌랠리구간, 화악산 임도1, 집다리골 임도’ 코스 중 일부 코스를 건너뛰면 전체구간을 즐기면서 무난히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뿐만 아니라 이번 대회를 통해 나의 고향,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인 ‘춘천’ 산야를 맘껏 달리고 즐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대회전날, 금요일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집에 ‘전투조 3명(베라, 똔꽈, 나)’이 밤10시 도착하여 4시간여 잠을 청 한 뒤 새벽 3시 일어나 보니, 어머님께서 새벽 어스름을 깨워가며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맛있는 식사 준비를 하고 계셨다. 우리들은 어머님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담긴 식사 맛있게 먹었다. 출발 전 어머님께서는 불혹의 나이가 훌쩍 넘어 세월의 흔적을 이마의 훈장처럼 새긴 아들의 두 손을 꼭 붙잡으며 “잘 묵고~잘 타고 오니라. 험한 길은 위험하니 조심허고~ 무리허지 말고 타고 오니라......” 라고 말끝을 채 끝맺지 못하셨다. 그러나 그 속에 아들을 향한 사랑과 걱정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어머님께서도 이번 대회가 단순한 라이딩이 아니라 아들의 추억, 가족에 대한 사랑, 애향심이 담겨 있음을 공감하신 듯 했다. 그래서 더욱 최선을 다해 임하기로 결심했다.
출발과 도착지인 ‘춘천 송암 운동장’에 도착하니 수많은 선수들과 지원조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간단한 개회식을 마치고, 새벽 4시에 출발하여 280km 대장정을 시작하였다. 한 시간 도로를 달린 뒤 900고지인 ‘대룡산 업힐’이 시작되었다. 경사가 아주 완만한 코스 이외는 ‘끌바(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올라가는 것)’하면서 정상부근까지 한 시간 정도를 올라갔다. 약간의 임도와 싱글 다운 후 이어진 싱글 길을 ‘업힐’과 ‘끌바’, ‘다운’을 반복하면서 아침 지원 포인트인 32km 지점인 ‘상걸교’에 도착하였다. 계획된 시간인 7시보다 조금 일찍 도착하여 아침 식사를 한 후 물과 간식을 지원받았다. 이제부터는 지루한 50여km의 ‘대룡산, 가리산 임도’의 시작이다.
‘업 다운’을 반복하면서 춘천의 아름다운 산야를 맘껏 감상했다. ‘춘천(春川)’은 도시의 이름 그대로 춘흥에 신명나고, 물의 아름다움에 흠뻑 젖을 수 있는 경관이었다. 그리고 시원스럽고 낙락장송같이 변함없이 흐르는 물의 도시에서 인생무상과 유유자적을 즐기는 신선이 된 것 같았다. 그 뿐만 아니라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에서 ‘달빛 아래 술을 마신 뒤 신선이 되는 꿈을 그린 것이 지금 내가 본 이 광경을 보고 춘흥과 감흥에 취하여 노래하였으리라’라고 생각하니 감격이 더욱 벅차 올랐다.
6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곳은 86km 지점인 ‘덕진교’에 도착하니 함께 전투조에 참가한 ‘베라, 똔꽈, 리카’의 동호회에서 응원 차 먼 길을 달려와 기다리고 있었다. 격려와 응원 그리고 맛난 점심식사 후 곧바로 다음코스를 향해 부지런히 페달을 밟았고, ‘북방리, 연엽산’을 ‘업힐, 끌바와 다운’을 반복하며 117km 지점인 ‘새슬막’에 오후 4시에 도착, 계획한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물과 간식을 지원받아 ‘금병산’ 시멘트길 ‘끌바, 업힐’, 싱글길 ‘끌바와 다운’으로 2시간 후 ‘김유정 역’에 오후 6시 도착하였다. 라이트와 물과 간식을 지원받아 그리 높지 않은 산을 넘어 강촌에 도착하니 날은 이미 어둠을 준비하고 있었다. 강촌랠리 코스인 ‘봉화산’을 ‘끌바’ 없이 ‘업힐’ 한 뒤 라이트를 밝히며 긴 ‘임도길’을 다운하여 ‘가정리’ 마을길을 지나고 나니 151km 지점인 ‘술어니고개’ 입구인 ‘방하리’에 밤 9시30분 도착하였다. 시장한 터라 허겁지겁 저녁식사를 하니 몸이 파김치가 되었다. 이제는 푹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는데 오늘밤 잘 곳까지는 아직 50km정도 남았다고 한다. 야간운전도 하기 싫어하는 나로서는 지친 몸으로 야간 라이딩을 한다는 것은 여간 곤혹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시 출발할 수 밖에 없었다. 라이트 점검하고 어두운 밤이라 전투조 4명이 함께 모여 출발하여 ‘굴봉산역’ 방향으로 끊임없는 ‘업힐과 끌바’, ‘다운’을 반복하며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술어니고개’를 넘었다. ‘굴봉산 역’을 지나 지원조와의 약속장소인 ‘당림초’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 오늘밤 잘 곳까지는 아직 20km 남았다. 몸은 이미 지칠 대로 지쳐 있었지만 정신은 오히려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싸리재’를 넘어 197km 지점인 ‘화악산 임도’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3시, 내 몸은 완전 녹초가 되었고 정신마저 혼미해 지는 기분이었다. 지원조가 마련한 텐트에 들어가 곧바로 잠들었는데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올리며 확인한 시간은 새벽 4시. 한 시간 밖에 못 잤는데 지원조가 전투조를 깨우는 소리였다. 지금 출발하지 않으면 컷오프(정해진 시간 안에 완주 못하는 것)당할 수 있다고 한다. 순간 눈을 뜨기가 죽기보다 싫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리고 처음의 그 결심은 사라지고, 대회의 의미조차 희미해 졌다. 오직 내 지친 몸에 휴식을 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이제 포기한다고 말할까, 아니면 화악산 임도만 타보고 말할까, 아니면 컷오프 되더라도 한 두시간 더 자고 일어나 적당히 즐기는 라이딩을 하고 끝낼까.’ 짧은 순간이었지만 많은 생각이 뇌리 속에서 교차했다.
그런데 2년 연속 280에 완주하신 베라님께서 몸이 불편하여(무릎)포기 하신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가 들렸다. 아무 말 못하고 야채스프 한 그릇 마시고 ‘화악산 임도1’ 출발, 급경사 시멘트길 ‘끌바와 임도다운’ 그리고 이어진 ‘화악산 임도2’는 경사는 ‘화학산 임도1’ 보다 훨씬 험하고 거리 또한 길었다. 지원조가 챙겨준 ‘방울토마토, 바나나, 이온음료’ 등을 흡입하며 3시간여를 달려(?) 맛난 아침 기대하며 7시경에 도착한 곳은 ‘홍적고개’. 그런데 지원조는 빵 하나와 물만을 챙겨주고 900고지인 ‘집다리골 임도’로 올라가라고 한다. 아침식사를 ‘집다리골 임도’를 마친 뒤 먹어야 마지막 코스인 ‘북배산’을 허기지지 않고 올라갈 수 있고 완주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집다리골 임도’는 지난번 답사이후 추가된 급경사 코스로 체력이 많이 떨어진 후반부에 업힐 한다는 것은 상당한 체력과 정신력이 필요한데 자신이 없었다. ‘똔꽈님과 라카님’은 상당히 뒤쳐진 상태였고, ‘베라님’도 포기한 상황에서 나까지 완주를 포가하면 안 된다는 책임의식, 그리고 누군가는 완주해야 된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에게는 숙명과도 같았다. ‘그래 고통을 즐기자 그리고 집다리골 시원한 공기를 마시고 내려오자’라고 다짐했다.
처음부터 급경사인 ‘시멘트 끌바’ 가도 가도 끝이 없었다. 두 시간 정도 지루한 ‘끌바’ 후 10km를 이동해 도착한 곳은 해발 900m 지점인 임도 정상. 몸은 많이 지쳐있었지만 시원한 바람과 내려다 보이는 풍광에 피곤함은 모두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임도 정상에 있는 정자에 누워 지원조가 가방에 넣어준 바나나와 에너지바를 먹은 뒤, 다시 출발 끊임없는 돌멩이 다운의 연속이었다. 브레이크를 잡고 있는 손목에 통증이 오기 시작하였고 목덜미가 아파왔다. 10km 거리를 30분 달려 지원조가 기다리는 ‘지암계곡’ 입구에 도착한 시간은 9시 30분. 이제 남은 시간은 6시간 정도. 그런데 아직 57km 남았다고 한다. 한 시간에 평균 8km 산술적으로 도저히 완주(시간 내 도착)는 어려워 보였다. 매우 시장했던 터라 지원조가 마련한 마지막 만찬(?)(소갈비구이, 소고기국)을 맛나게 정신없이 해치웠다. 나는 ‘이제 완주가 어려우니 포기하고 그냥 돌아가자’라고 말하려는 순간 지원조와 눈이 마주쳤다.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될 것 같은 분위기와 느낌이 가슴에 꽂혔다. ‘그래 컷오프 되더라도 출발하자’라고 결심했다. 베라님이 빨리 출발하라고 신호를 주신다. 도착지점까지는 지원할 포인트가 없어 남아 있는 거리인 57km를 지원조가 챙겨준 보급품(물, 빵, 간신, 과일 등)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출발 할 수밖에 없었다. ‘가덕산 삼거리임도’를 지나 ‘북배산’ 싱글이 시작되는 지점까지는 경사가 완만한 임도 길이었다. 그런데 ‘업힐’이라 많은 구간이라 대부분 ‘끌바’로 진행하였다. 드디어 싱글지점 도착. ‘그냥 임도로 30분정도 내려가면 고향마을인데~~~’ 하며 아쉬워했다. 맨몸으로도 올라가기 힘든 급경사 싱글 길을 자전거는 등에 지고 로프에 의지하며 올라가야만했다. 한 시간 이상 급경사 싱글 길을 멜바와 ‘끌바’를 반복하여 올라가니 ‘북배산’ 정상이었다. 저 멀리 고향 뒷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 있었다. 봄이면 나물 캐고, 가을이면 버섯 따고, 겨울이면 나무하러 다니던 그 산과 들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금시간 오후 1시, 남은거리 40km, 대부분 다운코스, 2시간 정도면 골인 지점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몸에 힘이 솟고 행복함이 밀려왔다. ‘북배산 싱글길, 당림리 임도, 석파령길 30km’를 맘껏 즐기며 신나게 내려왔다. 의암호 주변 자전거 길을 지나니 출발지점인 ‘송암 운동장’이 보였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골인지점에서 ‘베라님’이 사진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1박 2일을 잠시도 쉬지 못하고 지원조로서 고생한 ‘곰팅’과 축하 하이파이브 후 드디오 골인. 35시간 8분 무사히 여유 있는 완주였다.
기념 촬영 후 샤워를 끝내고 지원조가 마련한 시원한 그늘에 눕자 토요일 새벽부터 지금까지의 여정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내 고향 춘천을 자전거 페달을 벗 삼아 밟으며 어릴 적 추억의 조각들을 맞추고, 불혹을 훌쩍 넘은 내 인생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너’와 ‘나’로 만나 ‘우리’가 된 ‘헤라님, 곰팅님, 깊은 밤님’의 헌신적인 지원과 열정적인 응원, 함께 라이딩하며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고 먼 길을 달려온 ‘베라님, 똔과님, 리카님’께 가슴 깊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나에게 이들이 없었다면 결코 완주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인생여정의 앞바퀴와 뒷바퀴가 서로 밀어주며 힘을 주듯이 ‘우리’가 되어 멋진 인생을 새롭게 시작해야겠다고 다짐 했다. 그리고 살아가면서 힘들거나 무기력해지면 2014년 춘천 ‘280랠리’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삶을 정열적이고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다. 후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280랠리’를 생각하면 행복감이 밀려오고,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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