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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단양 280랠리 접수예정!
접수기간 : 2020. 5. 11 ~ 5. 31
대회기간 : 2020. 6. 27 ~ 6. 28
대회장소 : 단양(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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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접속자 : 46 (회원 0)
 
작성일 : 14-07-23 09:23
15회 280랠리 완주기(춘천의 힘 편)
 글쓴이 : 사내가요
조회 : 2,876  
   http://cafe.naver.com/bikeclinic/10386 [649]
원본을 보려면 아래 링크를 누르세요. 사진과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http://cafe.naver.com/bikeclinic/10386


15회 280랠리 완주기
춘천의 힘

1. 전채(前菜)

내 라이딩 인생의 첫 번째 큰 목표는 80세까지 자전거를 타며 건강하게 살자는 것이고, 두 번째 큰 목표는 70세까지 매년 280랠리에 참가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현실적이고 기본적인 세 번째 목표는 10번 연속으로 280랠리를 완주하자는 것이다. 지난 2010년 정선랠리부터 시작해 예산랠리, 평창랠리, 청양랠리, 글리고 올해 춘천랠리까지 5번을 완주했으니, 앞으로 갈 길이 더욱 힘들고 멀기는 하지만 이제 기본 여정의 반쯤은 온 셈이다. 몸은 쉰을 넘어선지 꽤 되었지만 마음만은 아직도 바람 같아서, 흙길이든 돌탱이길이든, 나뭇잎에 여린 속살을 부딪치며, 그저 갈증어린 욕망의 혓바닥과 혈관들로 마치 바람처럼 ‘헥헥!’ 산길을 핥으며 내달리는 내 모습을 꿈꾸어본다.

먼저 매년 제작해온 280랠리 상황판을 만들어 인터넷에 공개했다.
내가 만든 <15회 춘천 280랠리 구간별 상황판 v.3.1>은 다음과 같다.
http://user.chol.com/~pkw1124/My_280/15th_280.htm

내가 만든 <15회 춘천 280랠리 고도 상황판 v.3.1>은 다음과 같다.
http://user.chol.com/~pkw1124/My_280/15th_280.jpg

그리고 <15회 춘천 280랠리 다음지도 GPS 트랙>을 보고 싶으면 다음을 누르세요.
http://gpson.kr/gps_daum.php?log=http://user.chol.com/~pkw1124/gps/15th_280.gpx



2. 지원차량은 굿 모닝

단테형님은 재판일자 때문에 참석이 어렵게 되었다 하시고, 송죽은 오천 자전거길 왕복 300킬로미터를 하루에 달리다가 완주는 했지만 넘어져 다친 곳이 완쾌되지 않아 랠리 참석이 어렵다 한다. 이래저래 함께 할 선수들이 없어 올해는 지원조를 꾸리지 않기로 결정했다. 나도 내심 바라던 터라 첫 번째 참가했던 정선 랠리 때처럼 이참에 무지원으로 완주할 계획을 세웠다.
6월 4일 지방선거일을 이용해 랠리 코스를 구석구석 돌며 밥 먹을 수 있는 곳을 물색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어느 날 마누라가,
“내가 따라가 줄까요? 무지원으로 가면 너무 힘들잖아요?” 한다.
“물론 그렇지.… 하지만 지원이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속으로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마누라가 뭘 몰라도 한참 모르고 저런 소리를 하고 있지, 크’ 하고 생각하면서도 겉으로는
“그래 주면 나야 좋기야 하지.” 하는 말이 튀어나온다.
“알았어요. 왕초보 운전이라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내가 지원해 볼게요.” 하는 게 아닌가.
“근데, 자기 내 차 운전할 수 있겠어? 자기 차는 너무 작아서 자전거며 짐 싣기가 만만치 않을 텐데.…”
“내 차로 가면 안 되나요? 그 차는 좀 커서 자신 없는데.… 내 차가 좋은데.…”
“크, 경차 모닝에 어떻게 자전거도 싣고, 아이스박스도 싣고, 그 많은 짐을 실어?”
“그래도.…”
결국 자전거 캐리어까지 달려 있는 내 왜건형 비엠이는 주차장에서 잠자고, 도저히 실을 수 없을 것 같은 모닝에, 자전거 1대, 텐트 1동, 접이식 의자 1개, 4인용 매트리스, 아이스박스 3개, 옷보따리 2개, 기타 짐도 수두룩하게 실었다. 그 중 텐트, 의자, 매트리스 등은 랠리 선수인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몽땅 지원 나오신 우리 마누라님이 조금이라도 편하게 지원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거다. 흐. 어쨌든 다 싣고 나서 우리는 우리의 짐 싣는 능력에 경탄해 마지 않았다.
“우와~~ 그 많은 짐을 다 실었어!”
경차 모닝에 엄청난 짐을 때려 싣고, 6월 27일 금요일, 연가를 내고 아침 일찍 춘천으로 향했다. 미리 지원할 곳을 둘러보고 만날 장소를 약속하고, 맛있는 ‘느랏재 막국수’를 먹고, 춘천에서만 무려 220여 킬로미터를 달리니 순식간에 저녁 시간이다. 하도 많이 운전을 했더니 허리가 다 아프다. 당연히 모든 운전은 내가 했다. 흐.
저녁 8시, 잠이 오든 안 오든 미리 예약해 놓은 펜션에 누워 시끄러운 거리의 소란스러움을 자장가 삼아 비몽사몽 간을 헤매다 보니 어느덧 새벽 1시다. 마누라가 끓여준 라면을 2개나 뚝딱 해치우고 우리는 서둘러 출발지인 송암스포츠타운으로 달려갔다.


3. 첫날 176 킬로미터

새벽 3시에 배번을 수령해, 모닝에 완전 분해된 채 적재되어 있는 자전거를 서둘러 조립하고 소이농원 형님과 만나 간단히 담소를 나누고, 박병찬 군은 만나지도 못하고, 새벽 3시 55분에 출발한다.
처음 11킬로미터는 도로 구간이다. 꽤 경사진 오르내리막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도로를 많은 사람들이 질주한다. 이 처음 구간에서 근육을 무리하면 오후부터 쥐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게 생길 것이라고 예상했던 곳이기 때문에 나는 오르막은 최대한 천천히 오르고, 내리막은 가급적 빨리 달린다. 갈수록 끊임없이 추월당하다가 출발 37분만에 11킬로미터 지점인 대룡산쉼터에 예상했던 대로 거의 꼴찌로 도착한다.
쉬지 않고 대룡산을 오른다. 해발고도 720미터를 8킬로미터의 길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오르는 발걸음이 가볍고 호흡도 가뿐하다. 정상까지 길도 포장되어 있다. 거의 후미에서 시작했지만 한번도 쉬지 않고 21킬로미터 지점인 최고지점에 도착한 5시 57분에는 얼추 30% 안에는 든 것 같다. 집사람에게 전화해서 첫 번째 지원지점인 상걸리 도착 시간을 30분이나 당긴다. 사진 한 장 찍고 신나게 내리막길을 달려가니 대룡산 싱글 입구에 사람들이 몰려있다. 병목이 생각했던 것보다 길다. 마누라에게 괜히 전화했다. 이런 병목이라면 예상 시간에도 도착하기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집사람은 내 전화를 받고 펜션에서 이미 출발했을 터이니 이제와 후회한들 어찌하랴.
지리한 대룡산 싱글 병목 구간이 이어진다. 급경사 구간이 많아서 대부분 끌바로 기다렸다 가다를 반복하다가 싱글에 접어든지 1시간의 긴 시간을 쪼개어 간신히 도로에 합류한다.
냅다 도로를 달려 내려가니 첫 번째 지원 장소인 상걸리다. 어제 약속한 곳으로 달려가니 마누라가 반갑게 맞이한다.
먼저 오렌지 쥬스를 한 병 까고, 라이트를 반납하고, 소고기 미역국을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커피도 진하게 한 잔 마시고 옷도 위아래를 모두 갈아입으니 순식간에 40여 분이 흘러버린다.

7시 5분에 상걸리에 도착했는데, 7시 42분이 되어서야 가리산 임도로 출발한다. 마누라의 지원을 받으니 좋기는 한데,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르는 게 흠이다.
타다 끌다 하면서 대룡산 뒷부분을 다시 오르는데 뒤로 보이는 산세가 너무 멋있다. 자전거에서 내려 스마트폰을 꺼내든다. 멋진 뒷산을 찍고 있는데, “형님!” 하며 반갑게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특허청의 조약돌님이다. 같이 몇 장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 또 한 명의 반가운 얼굴이 지나간다. 공주금강MTB의 소이농원 형님이다. 2010년 정선 랠리의 세 멤버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280랠리에 나가고 싶었던 갓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나는 대전의 조약돌님과 공주의 소이농원 형님과 함께 무지원으로 첫 번째 280랠리에 참가했고 우리 셋 모두 완주하는 기쁨을 누렸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랠리 매니아가 되어 매년 랠리에 참가했고, 나는 이번까지 연속 다섯 번째 완주 중이다.
소이형님은 일행들과 함께 먼저 가고, 나와 조약돌은 사진을 몇 장 더 찍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신나게 달린다. 왕년에 인라인 스케이트 선수로 뛰며 전국대회에서 상까지 받았던 조약돌님은 근지구력도 좋고 폐활량도 훌륭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이 진국이다.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훈훈한 느낌이 드는 ‘진짜 신사’이다. 내가 얼마 전에 있었던 박달재 랠리 이야기를 꺼낸다.
“몇 시간에 들어 왔어요?”
조약돌이 싱그러운 웃음을 보이며 경쾌한 목소리로 말한다.
“8등까지 상을 주잖아요. 그래서 한번 욕심을 내고 달렸죠. 그런데 선두 그룹이 처음 도로 구간에서 40km 이상으로 계속 속도를 빼는 거에요. 그거 쫓아가다가 그만 지쳐버렸어요. 막상 임도에 접어들자 더 이상 빨리 못 달리겠더라구요. 결국 5시간 53분 걸려서 골인했어요.”
“역시 예상대로 6시간 이내네. 그럼 한 15등 안에는 들었겠는데?”
“13등였어요. 결국 8등 안에는 못 들어왔죠 뭐.”
“그래도 초창기 박달재 랠리 때 봄비, 하얀바퀴, 지티 등과 함께 팀을 이루어 1등으로 들어와 상금 백만 원도 받았잖아요. 이젠 그 정도도 대단한 거지 뭐. 나는 송죽과 함께 달리다가, 7시간 안에 들어오고 싶어하는 송죽에게, 뭐하려고 그렇게 빨리 들어가느냐고, 빨리 가봤자 기다리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라고, 그러니 우린 계곡에서 쉬었다 가자고 꼬셨지. 송죽이 영 말을 안 듣더니, 세 번째 꼬실 때에서야 간신히 넘어오더라구. 흐.”
“잘 하셨어요.”

그렇게 신나게 달리다가 조약돌님은 함께 온 분이 너무 많이 뒤쳐진 것 같아 할 수 없이 뒤에 남아 일행을 기다린다.
나는 대룡산 뒤편 임도를 따라 가락재 터널 위를 지나 가리산 임도로 접어든다. 페달링이 힘차고 가볍게 구르는 것이 시간 꽤나 단축할 기세다. 수려하고 아기자기한 상걸리, 품안마을, 품걸리의 산들을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강원도 산들의 굽이치는 산세와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11시 정각에 늘목고개에 도착한다. 상걸리부터 그 먼길을 돌고돌아 그곳까지 지원나온 차량들이 어찌나 많은지.… 참가자의 열정을 능가하는 강렬한 지원조의 열정이 느껴지는 감동적인 순간이다. 물론 왕초보 운전자인 내 마누라는 그곳에 있을 리 없다. 흐.

가리산 임도를 따라 다시 달려가는데, 가끔 저 멀리 잠깐씩 모습을 드러냈던 가리산 정상의 멋들어진 바위 얼굴이 개활지로 나선 어느 순간 눈앞에 좌악~~ 펼쳐진다. 달려가던 자전거를 멈추고 가리산이 잘 보이는 곳으로 다시 조금 뒤돌아가 사진을 찍고 출발한다.

12시 10분에 덕밭재에 도착하니, 집사람이 약속한 장소에서 텐트까지 쳐놓고 기다리고 있다. 텐트 안에 들어가 미역국과 콩나물국과 몇 가지 반찬으로 점심을 먹는데 잘 먹히지를 않는다. 생각보다 힘들었나보다. 게다가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짧은 순간에 텐트가 다 젖는다. 그래도 꾸역꾸역 먹을 만큼 먹고 나서, 마누라가 하겠다는 것을 굳이 뿌리치고, 텐트도 걷어주고, 의자도 접어주고, 비에 젖은 체인을 위해 자전거에 습식 오일도 적당히 쳐주고, 12시 45분에 다시 출발한다.

어렵지 않은 고개 탄상현을 쉽게 넘어가 연엽산과 구절산 임도로 접어든다. 그윽하고 깊고 주로 업힐로 이루어진 연엽산 임도를 타며 끌며 올라가, 앞쪽으로 거대하게 솟구쳐있는 구절산을 외경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한 바퀴 크게 굽이돌아 구절산 임도를 달리는데, 페달링하는 다리 근육에 힘만 잔뜩 들어갈 뿐 영 속도가 나지 않는다. 평지에 가까운 임도가 소나기로 젖으면서 마치 길에 본드칠을 해놓은 것처럼 힘만 빼먹을 뿐 시속 7킬로미터를 넘기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14킬로미터의 연엽, 구절산 임도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던지.... 아무리 굴러도 잘 나가지 않는 어둡고 음습한 길을 따라 힘들게 가고 또 가다보니 어느덧 급경사 다운힐에 다다른다. 손가락이 얼얼하고 엄지발가락이 멍멍해지면서 봉명리에 도착한다. 중앙고속도로 다리 밑에서는 자출사 회원들이 랠리 참가자들에게 이온음료를 나누어주고 있다. 배낭에는 손도 안 댄 물이 한 통 가득 남아있었지만 꺼내기 귀찮은 김에 두 잔을 얻어마시고 5번 국도 합류지점을 향해 한참 공사 중인 구간을 올라간다. 새슬막까지의 신나는 도로 다운힐, 얼굴을 때리는 가는 빗방울이 따갑다. 반갑게 맞아주는 마누라, 아이스크림을 세 개씩이나 사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다. 3시 28분에 새슬막에 도착해 다시 옷을 갈아입고 아이스크림과 캔맥주를 마시고 마누라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옆에서 일행이 도착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다른 지원조 두 팀이 시간 차이를 두고 같은 질문을 한다.
“와~, 아니 얼마나 빨리 달리면 벌써 도착해요? 완전 선수인가 봐. 그런데 중식 지점부터 여기까지 오는 길은 상태가 어때요? 몇 시간 정도나 걸릴 거 같아요?”
“글쎄요. 노면이 살짝 젖어있는 상태라 생각보다 힘이 더 드네요. 사람마다 시간 차이가 꽤 많이 날 것 같은 구간이에요. 빠른 사람은 2시간 정도부터 늦은 사람은 4시간까지 걸릴 수 있겠어요.”
“아저씨는 얼마나 걸리셨나요?”
“글쎄요, 덕밭재부터는 한 2시간 20분 정도? 북방리부터는 1시간 25분 정도? GPS를 보니, 뭐, 그 정도 걸린 것 같네요.”
나는 빨리 달린 것 같지 않은데, 물어보는 두 팀 지원조들의 표정에서는 부러워하고 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아직까지는 많은 선수들이 지나가지 않아서인지 도로를 내려오는 자전거들이 띄엄띄엄 눈에 들어온다.

어쨌거나 마누라와는 강촌 펜션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3시 57분에 다시 금병산 싱글을 향해 출발한다. 본격적인 금병산 임도에 접어들자 경사가 상당하다. 마빅 알파인 클릿 슈즈가 시멘트 바닥 경사에 힘이 달려 미끄러지면서 자주 쇳소리를 낼 만큼 급한 업힐 구간이 이어진다. 하지만 컨디션이 괜찮은 나는 그다지 힘들지 않게 꾸역꾸역 올라간다. 업힐 끌바 때마다 빠르게 올라가는 것은 아니지만 쉼없이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올라가다보니, 끊임없이 아주 많은 사람들을 추월하지만, 280랠리 전 구간에 걸쳐 나를 끌바에서 추월한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것을 보면 내가 끌바를 잘하기는 엄청 잘하나 보다. 물론 내가 선두권에서 달린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지만, 선두권이야 거의 준프로 선수들이니, 우리 같은 순수 아마추어 중에서는,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대견해 보이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4시 26분에 금병산 싱글로 접어들어 4시 38분에 전망대에 올라 사진을 찍고 숨 한 번 돌리고 다시 출발해 4시 47분에 금병산 정상에 도착한다. 올라갈 때에는 대부분 끌바였지만 내려갈 때에는 멋진 싱글 다운힐 구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힘들게 올라간 만큼 충분하게 보상 받는 다운힐이다. 멋진 싱글 다운힐이 끝까지 이어진다. 아주 짧게 서너 곳 정도에서 내릴 뿐, 마지막까지 자전거를 타고 내려갈 수 있는 아기자기한 싱글길이 이어지는데, 거의 도솔산 초급 길 정도의 난이도이다. 하지만 금병의숙로에 닿기 직전 마지막 다운힐 구간은 호박돌들이 널려 있어 위험하다. 이런 곳에서는 내려서 끌고 가는 게 랠리 완주를 위한 정도일 것이다. 다치면 랠리 완주를 포기해야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리기는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조심조심하며 타고 내려가는 길을 선택한다. 신나게 다운힐하느라 사진 한 장 찍지 못한 채, 5시 12분, 금병의숙로에 도착한다.

바로 팔미리로 향한다. 이곳에서 하프 코스가 갈라진다. 팔미리의 작은 고개를 넘는데, 고도 차이가 고작 60여 미터에 불과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만만치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팔미리 고개를 넘어 깨길고개를 오르는데,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경사 중에서 가장 급한 것 같다. 대룡산 업힐이나 금병산 임도 업힐보다 경사가 세고 길게 이어지는 기분이다.
내리막 경사도 급한 편이다. 브레이크 잡는 손가락이 얼얼해질 정도로 신나게 내려오는데, 앞에 4륜차들이 꽉 막고 있다. 외국인들 두 무리가 일렬로 임도를 점유하고 내려가고 있다. 뒤따라 내려가다가 너무 느리고 답답해서 왼쪽으로 추월을 시도하자, 팀장쯤 되어 보이는 나이든 외국인이 큰 소리로 외친다.
“자전거 추월할 수 있도록 다들 오른쪽으로 붙어!”
물론 영어로 한 말을 대충 알아듣고 번역한 것이다. 흐.
“땡큐요~~~!”
나도 한 마디 외치면서 왼쪽으로 재빨리 대략 20여대쯤 되는 두 무리의 4륜차들을 추월해 내려간다.
아름다운 강변길을 따라 달리다가 오후 6시 15분, 드디어 저녁 먹을 장소이자 예약해 놓은 펜션이 있는 강촌역에 도착한다.

춘성대교 근처에 펜션을 예약하지 못하고 강촌역 부근에 펜션을 예약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 두 번째로 발표한 랠리 코스에는 ‘물노리 – 가리산 싱글 구간’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지도 연구를 하던 중에 그 구간에서 범상치 않은 힘겨운 느낌을 받았고, 그 불안한 마음을 지우기 위해, 6월 4일 지방선거일날 그곳을 다녀왔다. 과연 물노리와 가리산의 산세는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험준했다. 그 구간을 다 지나서 첫날 180킬로 지점까지 간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였다. 지금까지 완주했던 4번의 랠리에서는 모두 약 180킬로 지점에서 1박을 했었다. 하지만 춘천랠리에서 물노리와 가리산 싱글을 거쳐 180킬로를 간다면 몸은 초죽음이 될 것 같았고, 지칠 대로 지친 채 밤 1시나 2시쯤은 되어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는 둘째 날이 너무 힘들어진다. 할 수 없이 나는 그 때의 코스도로 보면 150킬로 지점이었던 강촌역 부근에서 조금이라도 쉬었다 가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 그 날 강촌역에 가서 숙소를 예약해 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코스가 다시 바뀌어 버렸다. 물노리-가리산 싱글 구간이 안전상의 이유로 없어져 버리고, 대신 둘째 날 구간이 거리 면에서나 에너지 소모 면에서 훨씬 더 어렵게 바뀌어 버린 것이다. 아, 된장! 우찌 이런 일이. 그렇다고 이제와서 펜션 주인에게 해약해 달라고 사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결국 강촌역에서 저녁을 먹고, 강촌챌린지 코스를 야간에 돌고, 당림리 입구에서 강촌으로 와서 한숨 잔 뒤에 새벽 2시 30분에 다시 출발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게 되었던 것이다.

펜션에 들어가니 집사람이 각종 야채와 김치를 썰어넣은 부침개에 목살주물럭에 황태콩나물국에 상추, 쑥갓, 고추, 마늘에 밑반찬까지 좌악 펼쳐놓고 기다리고 있다. 양주부터 한 잔 마시고, 얼른 화장실에 들어가 샤워를 했다. 씻고 나니 기분이 더욱 상쾌해진다. 진수성찬을 천천히 마음껏 먹고 라이트와 배터리를 챙기고 파워바와 월매표 벌꿀과 홍삼과 석류액기스와 약재인지 식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몇 가지 성분들이 더 들어간 마누라표 진액을 탄 포카리스웨트와 물을 배낭에 챙겨 넣고 50분이 지난 7시 5분, 드디어 야간 구간으로 출발한다.

구곡폭포 주차장을 거쳐 강촌문배길을 따라 봉화산 안부를 올라 가정리까지의 길고 신나는 다운힐을 거쳐 깔딱거리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술어니고개를 넘어가니, 8시 47분, 드디어 임도 진입로이다. 4륜차들이 진입할 수 없도록 두 개씩이나 높게 돌담을 쳐놓은 입구를, 핸들바에 달려있는 라이트로는 발아래를 비출 수 없어 사실상 더듬다시피하여 간신히 넘어 들어가니 무성한 풀이 라이트 불빛에 반사되어 으스스한 기분이 들게 만든다. 이런 곳은 혼자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17킬로미터에 이르는 긴 임도길이 어둠 속에서 끝없이 굽이쳐 돌고 돈다. 체력적으로도 지쳐가는 밤길, 설마 이젠 끝나겠지 하고 산허리를 돌면 영락없이 다시 나타나는 또 다른 산허리에 속으면서 가도 가도 끝이 안 날 것 같은 힘들고 지루한 야간 풀길이 계속된다. 어떤 랠리 참가자들은 이른 밤임에도 지칠 대로 지쳤는지 그 무성한 풀 속에서 그대로 누워 잠들어 있다. 조금 더 가니 또 시체처럼 누워 쓰러져있는 한 무더기의 참가자들.… 흐, 불쌍하고 대단하다.
나도 이젠 지쳐갈 무렵, 밤 10시 25분, 예상했던 시간보다 30분쯤 늦어진 시간에 춘성대교를 지나 강변 자전거도로에 도착한다. 집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10분 뒤에 당림리에 도착할 것임을 알리고, 있는 힘껏 페달질을 한다. 10시 40분에 당림리 입구에 도착한 뒤에 강촌에 있는 펜션으로 가서, 씻고 2시간쯤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둘째 날 새벽 1시 40분이다. 마누라가 끓여준 라면 1개에 밥을 조금 말아 먹고, 물과 방울토마토와 육포 등을 배낭에 챙겨넣고, 새벽 2시 40분에 당림리 입구를 출발한다. 이젠 죽으나 사나 40킬로미터를 달려 홍적고개를 넘어 화악산 집다리골 입구까지 가야만 아침을 먹을 수 있다.



4. 둘째 날 110 킬로미터

당림리 입구에 도착하니 길가 이곳저곳이 온통 길바닥에서 자고 있는 참가자들로 넘쳐난다. 어둠 속에서 자전거를 옆에 뉘어놓고 자켓도 입지 않고 쓰러져 잠들어 있는 지천에 널려있는 불쌍한 중생들이다. 아, 이번 15회 춘천 랠리 코스가 세기는 센가 보다. 나의 경우만 보아도, 지금까지 네 번 모두 둘째 날 새벽 4시 30분 이후에 출발하지 않았던가. 그래도 피니시 지점에 늦게 도착할 것이라는 불안감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올해는 어떠한가!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180킬로미터 지점에서 자그마치 2시간이나 빨리 출발하고 있지 아니한가? 더욱이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혹시 북배산 싱글에서 지체되어 컷오프 시간을 맞추지 못할까봐 내심 조금은 조바심이 들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것도 이렇게 날씨가 환상적으로 좋았음에도.… 만일 장마철과 만났다면.… 완주율이 10%대밖에는 안 될 것 같은 끔찍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까?

당림리 농공단지를 지나 서면 임도 입구에서 빠른 속도로 끌바하며 두 명의 참가자를 추월하고 있는데,
“어, 형님!” 한다.
공주MTB의 성현이를 만난다. 조금 지쳐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끄떡없어 보인다.
“우리는 춘성대교에서 소이농원님 펜션에서 30분 쉬고 2시에 출발했어요. 소이농원님은 둘째 날 구간이 빡세기 때문에 혹시 시간이 늦어질까봐 저보다 1시간 전에 출발하셨구요.”
“나도 어제 강촌역에서 용태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만나긴 했는데, 하필 내리막길을 달리던 길이라 인사만 하고 그냥 왔어. 그런데 이은황 님은 어떻게 되었어?”
“어제 포기하셨어요. 더 이상 달리다가는 쓰러질 것 같다고.…”
“이런.… 하긴 워낙 연세가 많으셔서.… 조금 무리일 수도 있지. 그래도 완주하시길 바랬는데.…”
“그러게요. 이나저나 형님 먼저 가세요. 저는 일행과 조금 천천히 갈게요.”
“그래 알았어. 어쨌든 여기까지 왔으니까 성현이도 포기하지 말고 꼭 끝까지 완주해.”
“예, 그래야죠.”

본격적으로 서면 임도에 들어서자 풀은 더욱 무성해져서 어떤 곳은 얼굴까지 올라오는 곳도 있다. 게다가 경사가 심한 것은 아니지만 자전거를 타고 오르기에는 노면이 너무 안 좋다. 온통 울퉁불퉁 파이고 곳곳에 돌들이 노출되어 있어서 어지간히 험한 싱글 길보다도 길이 더욱 험하다. 그러다보니 속도를 낼 수 없어 시간만 잡아먹고, 고작 6킬로미터를 가는데 55분이나 걸린다. 임도 여기저기마다 때로는 한 명, 때로는 한 무더기를 이루어 길 옆 풀숲에서 쓰러진 듯 자고 있는 참가자들이 보인다. 어쩐지 어둠도 뱀도 멧돼지도 두려워할 마음의 겨를이 없어 보이는 것이 당림리 임도에서의 불쌍해하던 마음은 어디론가 다 사라져버리고 이젠 그 처절한 모습이 약하디 약한 우리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고 싶어 하는 위대하고 강렬한 인간의 욕망으로 비추어진다. 한없이 작은 존재이지만 때로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강대해질 수도 있는 우리 인간의 질긴 내면세계가 반어적으로 펼쳐진 모습, 바로 그것이 아닐까?
내리 쏘다보니 손가락이 얼얼해져서 이제 그만 올라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3시 35분, 서면 임도와 목동리 임도 사이의 펜션촌에 도착한다.

많이 좋아진 임도를 따라 다시 싸리재로 올라간다. 서면 임도에 비해 계관산 아래 목동리 임도는 길이 훨씬 잘 닦여있다. 적어도 업힐 구간에서는. 크.…
하지만 내리막길 구간은 지리산 300랠리의 한재 다운힐이나 두 곳의 형제봉 다운힐 구간보다도 험준하기 짝이 없다. 늙은호박보다 큰 호박돌들이 여기저기 널려있는 움푹움푹 패인 다운힐 구간은 도저히 시속 15킬로 이상으로 내려올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여러 명의 참가자들은 아예 끌고 내려가고 있다. 어둠 속에서 넘어지는 외마디 비명 소리도 들린다. 4시 20분, 양 어깨근육까지 불편해질 무렵, 마침내 목동리에 도착한다.

돌탱이 위로 많지 않은 물이 흘러내려가고 있는 계곡물을 건너 성황당교에서 도로에 합류해 우회전하여 화악리로 올라간다. 평지성 도로이기 때문에 속도를 붙여본다. 어둠이 막 가시기 시작하고 있는 어슴새벽, 시속 25킬로미터 정도의 빠른 속도로 도로를 거슬러 오르고 있는데 막 추월하고 있는 두 명의 참가자가 낯익다. 안장에 붙은 리본을 확인하니 아니나 다를까, 공주 금강MTB의 소이농원 형님이다.
“어, 소이형님 아니세요?”
소이형님도 반가운 목소리로, “어, 사내가요님? 빨리 출발했네.” 하신다.
“예, 저는 당림리 입구에서 2시 40분에 출발했어요. 그럼 저 먼저 갈게요. 이따가 도착지에서 봬요.” 하고 말하며 급하게 페달질을 한다.
막 추월해서 지나치고 있는데, 바로 앞에 금강MTB 지원차량이 보인다.
지원조 한 분이 나를 보고 손을 내밀며
“어, 뭐라도 먹고 가시지.…” 하시는데, 이미 속도룰 붙여 달려가던 나는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저는 먼저 갈게요.” 하고 말하며 냅다 화악산으로 달려간다.

새벽 4시 47분, 드디어 화악산 애기골 임도 입구에 도착해 애기골을 오르기 시작한다.
화악산은 1,468미터로 남한에서 12번째로 높은 산이다. 등산하는 사람들은 애기골을 올라 1,055미터의 애기봉을 거쳐 1,450미터의 중봉을 오르게 된다. 화악산 정상까지 능선이 이어지지만 정상에는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어 산행은 중봉까지만 가능하다. 애기봉에서 뻗어내린 골짜기이기 때문에 ‘애기골’이라는 귀여운 계곡명이 붙었을 뿐, 애기골은 절대로 애기가 아니다. 흐, 만일 정말 애기라면, 세상에, 사나워도 이렇게 사납고 흉물스러운 애기는 세상에 다시 없을 것이다. 엄청난 급경사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고도를 올리고 나면 오히려 그 때부터 진을 빼는 기묘한 임도 길이다.
‘혹시 그래서 애기골인가? 세상의 많은 애기들이 주로 그런 식으로 엄마의 진을 빼기는 하지. 크.’
‘애기골’이라는 이름을 모두(冒頭)로 삼아 별별 상상을 다 하면서 애기골을 오른다. 주로 가벼운 업힐로 이루어진 지루한 오르내리막 길이 임도 정상부터 약 8킬로미터쯤 이어지는데, 그게 말이 8킬로이지, 느낌만으로 말하자면, 사나운 애기 한 명 들쳐업은 채 낑낑거리고 헥헥거리며 끝없이 오르내려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내가 280랠리 중에 파워젤을 먹었던 것은 오직 11회 때뿐이었다. 처녀 출전이었던 정선랠리 때에는 인터넷에 떠도는 남말만 듣고 파워젤을 다섯 개쯤 준비해 갔고, 그 중 세 개쯤을 먹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12회 예산랠리, 13회 평창랠리, 14회 청양랠리 때에는 단 한 번도 파워젤을 먹어본 적이 없다. 지원조에서 파워젤을 준비했고, 내 안장가방에는 언제나 파워젤이 들어 있었지만 그것을 먹고 싶은 생각은 한 번도 든 적이 없었다. 그것은 메리다 오디랠리에서도, 제천 박달재랠리에서도, 그리고 지리산 300랠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지금 그게 댕긴다. 마누라표 라면에 밥까지 말아먹고 왔음에도 배는 거지처럼 꼬르륵~ 소리를 내며 요란을 떨고 있고 목구멍에서는 파워젤이라도 빨리 넣어달라고 아우성을 친다. 결국 파워젤 한 봉지를 뜯어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싸악 빨아먹는다. 그리고 준비해간 소금사탕을 입에 넣고 쪽쪽 빨면서 길을 걷는다.
애기골은 다운힐도 ○○이다. 골짜기 하류로 갈수록 책상만한 바위와 무등산 수박만한 돌탱이들이 ‘계곡 그 자체가 길’인 곳에 널부러져 있어, 이게 길인지 된장인지 구분할 수 없는, 길도 아닌 것이 길인 척하는 ‘사이비 길’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저 샥만 억울하게 아무 말도 못하고 울컹울컹 수시로 바툼을 치며 오바이트하듯 오일을 게워내고 있다. 계곡 끝부분에서는 결국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간다. 지리지리하던 손가락에 싸악~ 피가 흘러들기 시작하고, 멍멍하던 발가락에도 시원하게 피가 돌기 시작한다. 아, 살 것만 같다. 말 못하는 샥도 아마 한숨 덜었을 것이다.
애기골 임도를 다 내려와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다시 도로를 건너 화악산 임도 입구를 향해 달려간다. 막 화악임도를 올라가려고 임도로 자전거를 들이미는데 갑자기 옆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사내가욘님, 이리 와서 수박이라도 한 덩이 드시고 가요.” 하는 게 아닌가. 순간 눈이 번쩍 뜨인다. 배에서는 확인이라도 해 주듯 ‘꼬르륵~’ 소리를 내준다. 아, 온아MTB의 지원조 분들이다.
“예산 랠리 때 함께 달렸었는데.…” 하며 반갑게 맞아주는데,
나도 호들갑스러울 정도의 반가운 목소리로 대꾸를 한다.
“와우,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자전거에서 내리자마자 위대하고 대단하신 산적두목님이 수박 한 덩이를 푸욱 베어 내온다. 나는 염치 불구하고 수박을 받자마자 포도청인 입 속으로 쑤셔넣는다.
“따뜻한 꿀차도 한 잔 들고 가세요.” 하면서 꿀차도 한 잔 가득 끓여준다. 나는 그것도 체면 따질 겨를 없이 마지막 한 방울까지 핥아 마신다. 이렇게 뜻하지 않게 배고픔을 벗어나다니,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12회 예산 랠리 때에 모조 아이비스 올마운틴 자전거로 참가해, 부산의 못안개님 등과 함께 1등으로 골인한 산적두목님은 그 뒤로 랠리에서는 손을 떼고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종주를 단독 무지원으로 자전거를 메고 이루어냈다. 설악산 대청봉과 지리산 천왕봉 정상에서 모조 올마를 들고 온아MTB 프래카드를 펼치고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때, ‘저, 저, 미친~~~~’ 하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런 곳을 자전거로 종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이미 미치지 않고는 가능하지 않은 짓이니, ‘저, 저, 미친~~~’ 뒤에 생략된 단어가 무엇일지는, 아마 모른다면 바보가 분명할 것이리라. 지금은 우리나라의 1대간 9정맥을 자전거로 완주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바이크 매거진에 그 힘들고 긴 여정을 연재하며 3천 킬로미터의 대장정을 진행 중이라 한다.
“이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 1,100킬로미터밖에 못했으니 아마도 수년은 더 걸릴 겁니다.” 하는 산적두목님의 꿈이 꼭 이루어지기를 그분의 팬으로서 기원하는 바이다. 그리고 바이크 매거진 외에도 더 좋은 후원자들을 만나 조금이라도 도움을 받으면서 완주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어쨌든 날이 환해진 아침 6시 12분, 다시 화악임도를 올라간다. 역시 지친 몸들이라 그런지 다들 얼굴에 힘겨움이 잔뜩 묻어있다. 나는 일정한 속도로 꾸준히 쉼없이 자전거를 끌고 올라, 6시 47분, 임도 정상에 도착한다. 약 3킬로미터의 업힐 구간에서 딱 35분이 걸렸다. 그 뒤로는 거의 신나는 평지성 다운힐 구간이 6.7킬로미터 이어진다. 23분 뒤인 7시 10분에 홍적고개에 도착한다.
홍적고개 정상에서 온아 회원님들이 아침 식사를 하고 있다. 산적두목님을 비롯해 몇 분이 나를 불러 세워 뭐라도 먹고 가란다. 나는 자전거를 탄 채 고개 숙여 인사하며,
“예, 말씀 감사합니다만, 저도 지금은 아침 먹으러 가야 해서요.”
산적님이 묻는다.
“누구 지원나온 사람 있어요?”
“예, 집사람이 조 밑에서 기다리고 있네요.”
“아, 그러시구나. 예, 그럼 꼭 완주하시구요.”
“예, 당연히 완주해야죠. 또 봬요.” 하고는 쏜살같이 집다리골 임도 입구까지 달려 내려간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면서 마누라를 찾고 있는데, 바로 코앞에서 마누라가 나를 부른다.
“아이구,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집사람이 부산하게 이것저것 먹을 것들을 내어오는데 그 맛있는 음식들이 잘 먹히지 않는다. 냉콩나물국에 밥을 말아 한 그릇 먹어치우고, 쥬스도 한 병 까 마시고, 부침개도 조금 뜯어먹지만 나머지 음식들은 손도 대지 못한다.
“커피 끓여 드릴까요?”
“응.… 아니, 응.… 됐어.… 아니, 마셔볼까?”
이랬다 저랬다 마음이 1초에도 몇 번씩 변하는 기분이다. 대충 먹을 만큼 먹은 뒤에 라이트와 배터리를 자전거에서 떼어내고, 배낭도 벗어던지고, 불필요한 물품들도 제거해서 정리한 뒤에 옷도 갈아입고 출발 준비를 서두른다.

7시 30분, 집다리골을 올라간다. 꽤 길게 느껴지는 구간이다. 한 명 두 명 추월해 가는데 여기저기에서 긴 한숨들이 터져나온다.
“휴, 힘들다!”
“에휴~~, 끝이 어디얏!”
길고 급경사로 이루어진 직선 구간이 끝나고, 집다리골 자연휴양림으로 이어지는 임도 3거리를 지나고 크게 굽이쳐 도는 업힐 구간을 지나고, 그저 정자가 나오기만을 눈꼽아 기다리며 자전거를 끌고 오르는데,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긴 한숨소리가 짙은 안개에 묻힐 뿐이다. 나도 막, ‘아, 이제 힘들구나!’ 하고 생각될 즈음, 드디어 정자에 도착한다. 이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 등산로 합류지점부터는 거의 끝까지 신나는 다운힐 구간이다. 갑자기 속도가 붙는 기분이다.
집다리골 임도 다운힐은 모처럼 신나게 달려 내려온다. 싸리재의 거친 돌탱이 다운힐에 맛이 가고, 애기골의 길 같지도 않은 돌덩어리계곡 다운힐에서 더 맛이 간 상태였기 때문인지, 집다리골 임도 다운힐은 모처럼 임도 같은 다운힐인지라, 발가락에 쥐가 날 만큼 타이어를 눌려대고 최대 속도로 달려 내려온다. 자갈과 흙이 적당히 섞인 길을 우당탕퉁탕거리며 거의 브레이크를 잡지 않고 내리 쏴대다가, 어느 순간 이런 생각도 든다.
“길 오른편은 전부 천길 낭떠러지인데, 이렇게 임도 오른쪽 길로만 달리다가 날게 되면 내 몸은 어떻게 될까? 저 큰 나무들에 걸려서 목숨은 부지할 수 있겠지 설마? 아니면 어릴 적 강아지풀 줄기에 똥꼬를 꿰어 들고 구워 먹었던 개구락지처럼 저 나뭇가지에 내 몸이 꿰어버리진 않을까? 에휴, 웬 허튼 생각.… 크.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왼쪽 길로 내려갈까?”
그래도 개버릇 남 못주고, 그놈의 개버릇은 여든까지 간다더니, 그게 다 나를 두고 한 말이었다. 나는 피니시 지점에 도착할 때까지 버릇처럼 천길 낭떠러지로 이루어져 있는 오른쪽 길로만 다운힐을 했다.
‘왜 나는 유난히 왼쪽 길보다 오른쪽 길을 더 좋아하는 것일까? 심리학자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인가, 정신과 의사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인가? 아니면 그저 불가사의한 인간의 버릇일 뿐인가?’
하루종일 다운힐 내내 별별 생각들이 머릿속을 휘젓고 다닌다.
드디어 가져간 GPS 배터리가 다 끝나 버렸다. 내 완주 및 운행 기록을 정확히 남기기 위해 매번 가져갔던 GPS였지만, 매번 둘째 날에는 배터리가 방전되어 끝까지 기록하는데 성공한 적이 없었다. 이번만큼은 성공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아, 또 실패닷! 어젯밤에 충전했어야 했는데 조금이라도 자고 가려는 생각이 앞선 것이 문제가 되었다.

9시 7분, 집다리골을 내려와 마누라가 있는 곳을 찾아 도로변을 두리번거리며 올라간다. 마누라는 몽덕산, 가덕산 임도 바로 입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컵라면을 한 개 끓여 먹고, 부침개도 조금 떼어먹고, 2.7리터나 되는 물을 배낭에 구겨 넣고, 마누라표 원액도 채우고, 마지막으로 옷도 갈아입으면서 막 출발을 서두르고 있는데, 느닷없이 마누라가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하고 묻는다.
나는 새벽 구간 중에 공주MTB 성현이도 추월했고, 목동리에서는 소이농원 형님도 추월했고, 특히 끌바 중에 수십 명을 추월하면서 달려왔기 때문에 늦게 왔다는 생각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은 상태인지라 조금은 어안이 벙벙한데,
“요 옆 팀은 벌써 도착해서 아침 먹고 좀 전에 다 출발했는데.… 그 분들 거의 다 60대 전후로 나이도 많아 보이고.…”
나는 어설프게 핑계를 대본다.
“에이, 그 사람들은 다 비록 나이는 많아도 왕년에 운동 꽤나 했던 선수들이야.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못 가. 진짜 선수들은 280랠리도 28시간 안에 완주하는데 뭐. 그런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면 안 되지.”
“그건 그렇겠지만.… 어쨌든 자기도 대단해요.”
하고 뒷말을 흐리는 폼새가 어쩐지 눈곱의 때만큼 떨떠름하다. 흐.
나는 속으로, ‘에이 씨, 그 사람들은 잠도 안 자고 출발했나? 나이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더니, 아, 나이도 많이 들었다면서 좀 천천히 가면 안 되나? 왜 이 시간에 벌써 마지막 구간을 접어들고 그래? 에이, 이제부터라도 나도 신나게 쏴서 확 추월해 버릴까보다. 씨.’ 하고 오기인지 치기인지 모를 유치한 생각을 부려본다.
마누라는,
“그 지원조들 말이, 이제 비록 마지막 매우 힘든 구간이 남았지만 임도 안으로 집어넣기만 하면 무슨 짓을 해서든 지들이 알아서 다 도착지점까지 가게 되어 있다고 하네요. 따라서 집어넣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난 거라고 하던데요.”
“당연하겠지. 그것도 이 시간에 벌써 마지막 구간을 들어갔다면 그 사람들은 다 당연히 완주한다고 봐야지.”
“그 사람들이 마지막 구간에서 시간이 엄청 많이 걸린다고 걱정하던데.…”
“그럴 거야. 나도 아마 3시 넘어야 피니시 지점에 도착할 것 같애. 그러니까 너무 일찍 송암스포츠타운에 가 있지 말고, 펜션에서 푸욱 쉬고 한숨 자다가 3시 넘어서 그곳으로 와.”
“알았어요. 자, 우리 신랑 그럼, 파이팅해요.”
“오케이, 알았어. 자, 파이팅!”
그렇게 9시 30분쯤에 마지막 구간을 접어든다.

2.7킬로미터의 급경사 임도를 끌바하여 오월4거리에 도착한다. 그리고 신나게 다운힐하다가 조금 오르내리다가 다시 신나게 내리쏘다보니 오월3거리다. 서상3거리까지는 길지만 세지 않은 업힐 구간, 제법 길게 느껴지는 업힐이 끝나고, 다시 신나게 내려간다. 긴 다운힐, 너무 많이 내려가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때쯤 해서 다시 평지성 업힐이 이어지고, 뒤에서 어떤 참가자가 계속해서,
“뭐 이따위로 코스를 내 놨어? 쉽게 쭈욱 내려갔다가 쉽게 임도 따라 쭈욱 올라가고 하면 얼마나 좋아? 왜 어거지로 산을 넘게 하고 그래?”
궁시렁 궁시렁 토로하는 불만 가득찬 말을 배경음악 삼아 달리다가 드디어 북배산 싱글 진입로에 들어선다. 그 말 많은 북배산 싱글!
뒤에서는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계속 이어진다.
“으헥! 저길 올라가야 하는 거얏! 무슨 코스 설계를 이따위로.… 에구 젠장! … 궁시렁.… 궁시렁.…”
그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나에게는 힘이 되는지, 가볍게 자전거를 어깨에 들쳐메고 사뿐하게 한 손으로 줄을 잡고 걸어 오른다. 몹시 힘들 것이라고 지레 염려한 바가 컸기 때문인지, 막상 싱글에 접어드니, 경사가 센 것은 맞지만, ‘이 정도면 껌이지’ 하는 생각도 든다.
‘뭘 이 정도를 가지고.…’ 하는 나름 치기 담긴 건방진 생각을 하면서 꽤 빠른 걸음으로 능선에 올라붙는데, 뒤에서 궁시렁거리는 참가자의 생각과는 반대로 나는 코스 설계자에게 감탄하고 있다.
“아, 정말 대단하다. 북배산을 넘어 임도를 연결할 생각 자체도 좋았지만, 이렇게 깊은 곳에서 어떻게 이렇게 짧은 거리로 능선에 올라붙을 수 있는 길을 찾아냈을까?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찾아냈을까? 아니면 거꾸로 북배산에서 내려오다가 단 한 번에 이 짧은 길을 찾아냈을까? 정선랠리를 설계한 사람도 이도령이었는데, 그 때도 사북으로 넘어가는 그 험준한 길을 찾아내 코스를 이어붙인 것을 보면서 한편으론 징그럽고, 한편으로 대단하다고 감탄했었는데, 정말이지 이도령이라는 그 사람 참 대단한 분이네. 아니면 춘천 지리에 밝을 북한강이라는 분이 이 길을 찾아낸 걸까?…”
내 생각에는 기가막히게 멋진 감동적인 코스 설계였다. 어쨌든 북배산 정상까지의 아직 먼 싱글 길을 생각하며 서둘러 발걸음을 떼고 있는데, 아, 이런, 저 앞이 사람들로 꽉 막혀 있다. 추월도 불가능한 좁은 외진 길이 먼저 진입한 사람들로 병목현상이 발생해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이 뒤 따라 올라가는데, 가끔 지칠 대로 지친 참가자들 일부가, “먼저 가세요.” 하면서 길을 비껴준다. 어떤 참가자는 경사진 길옆에서 쓰러져 자고 있고, 어떤 이는 누워 쉬고 있고, 누군가는 웅크리고 앉아 반달곰처럼 파워바 등을 먹고 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여기까지 온 참가자들은 모두 완주에 성공할 것이다. 나는 완주를 위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그 지친 모습에서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강인한 내면을 응시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앞 사람 궁둥이만 보며 따라 올라갈 수밖에 없는 지루하고 긴 북배산 능선길이 이어진다. 저 앞에서 긴 자전거 행렬을 비껴가면서 부부 등산객이 내려온다. 여자가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다. 아마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음이 분명하리라.
‘미쳤지, 미쳤어! 사람이.… 자전거를 메고.… 이렇게 험한 급경사 지대를.… 사람이라는 게 참 놀랍고 대단하고 끔찍하군!’
나도 그 부부 등산객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 하고 많은 좋은 명산들을 두고 왜 하필이면 사람도 안 다니는 이런 외진 산, 길도 다 풀에 묻혀버린 이런 깊은 야산으로 등산을 왔을까? 알고 온 거야, 모르고 온 거야? 알고 왔다면 저 사람들도 이 랠리 꾼들처럼 참으로 미친 등산객이네. 아무리 산이 좋다지만.… 흐.’
앞에 가던 랠리 참가자가 북배산 싱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준다.
“나는 북배산 싱글을 두 번 사전답사했거든. 그런데 이 구간이 얼마나 힘든지, 사전답사 왔다가 아예 랠리 참가를 포기한 사람들도 많아.… 이제 곧 맛뵈기 급경사가 나올 거야. 능선에 붙는 싱글 시작 지점과 비슷한 길이의 급경사 구간이지. 그런 맛뵈기 급경사 구간이 두 군데 있고, 진짜는 마지막에 있어. 맛뵈기보다 훨씬 길고 급한 경사를 올라가야만 정상에 닿지. 한 번은 비가 올 때 사전답사를 왔었는데, 미끄러워서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는 거야. 오늘도 비가 내렸다면 정상에 올라갈 수 없었을 거야.… 어쨌든 아무리 늦어도 1시까지는 북배산 정상에 도착해야만 시간 안에 도착지점에 닿을 수 있어. 북배산 정상부터 도착지점까지 거의 다 다운힐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랠리 참가자들은 3시간 정도 걸릴 것이고, 아무리 작게 잡아도 2시간 30분은 걸린다고 봐야 돼. 물론 평소에 아주 잘 타는 사람은 2시간에도 가기는 하지. 하지만 랠리 막바지인 점을 고려하면 최소 2시간 30분은 걸린다고 봐야지.”
“북배산 정상부터 임도 합류지점까지는 어떤 가요?”
“거기야 뭐, 거의 다 타고 내려갈 수 있는 곳이지. 나무뿌리 등이 썩어 퇴적된 검은 흙길이라, 경사는 급하지만 넘어져도 푹신해서 다칠 일 없는 곳이고, 마지막 벌목해 놓은 곳은 잔나뭇가지들이 많아서 균형잡기가 쉽지는 않지만, 타고 내려갈 사람들은 다 타고 내려가더라구.”
그 분 말대로 맛뵈기 급경사 지대를 낑낑거리고 오르니 평지성 능선이 이어지고, 평탄한 능선을 따라 걷다가 다시 또 맛뵈기 급경사 지대를 올라가니, 저 앞에 북배산 정상이 병풍처럼 옆으로 좌악~ 펼쳐진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 거의 서있다시피 기어오르고 있는 랠리꾼들의 긴 행렬이 자전거와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형형색색 길게 한 줄로 늘어서 있다. 36년간 열심히, 때로는 미친 듯이 산을 다녔던 내 허파도 가끔 긴 한숨을 필요로 한다. “후우~~~!” 거의 쓰러지다시피 길옆으로 비껴 눕는 참가자들이 여기저기 보인다. 처음 급경사 지대를 오르면서 생각했던 ‘이 정도면 껌이지!’ 했던 생각은 어느 사이 땅속으로 숨어버린다. 여기는 누구나 오르기 힘든 구간이다.
마지막 긴~~~ 급경사 지대를 앞 사람을 따라 오른다. 추월할 수 없어 더디지만, 그게 오히려 위안이 된다.
12시 정각, 드디어 북배산 정상에 도착한다. 나는 뒷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정상 표지석에 자전거를 기대놓고, 자전거를 나라고 생각하면서 사진도 찍고, 배낭에서 방울토마토와 초코파이를 꺼내어 점심 대신 먹는다.
12분쯤 지나 북배산 정상 부근의 넓은 개활지로 간다. 그런데 그곳에 온아MTB의 지원조 분들이 보이는 게 아닌가!
“어, 여긴 어떻게?”
깜짝 놀라 산적두목님을 보며 묻는데, 산적님은 씨익~ 웃기만 하다가,
“뭐라도 먹고 가요.” 한다.
세상에, 북배산 정상까지 지원을 나온 것이다. 과연 산적두목답다. 가장 힘든 구간에서 지원을 받고 있는 온아MTB 회원들은 다 복받은 사람들이다. 내 머리 속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지원이로다! 전 세계 어떤 랠리인들 이런 확실한 지원이 있으리오!’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전 그냥 먼저 갈게요. 조금 있다 도착지에서 봐요.”
하고 말하면서 북배산 다운힐에 접어든다.
다운힐의 경사가 장난이 아니다. 도솔산으로 비교하자면, 모래추길에서 가장 센 경사 구간 정도이다. 주로 흙길이라 앞에서 내려간 자전거 바퀴들이 길게 줄을 파놓아, 그 줄을 따라 웨이트 백한 채 브레이크를 잡고 질질 미끄러지면 되는 곳이다. 그렇게 얼마나 내려갔을까? 브레이크 잡은 손가락이 저려서, 원 핑거를 포기하고 투 핑거로 변환하기에 이를 무렵, 능선에서 임도로 붙는 벌목지대에 도착한다. 베어 버린 나무 시체들이 길 옆에 널려있다. 중간쯤 타고 내려가다가, 잘못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랠리 완주에 지장 생길까 두려운 마음이 들어, 결국 길옆으로 내린다. 끝까지 타고 내려가는 참가자들을 먼저 보내고 뒤에 사람들이 없는 틈을 이용해 재빨리 뛰어서 내려간다.
임도에 접어들어 물 한 모금 마시고, 신발을 벗어 안에 있는 흙과 모래알갱이들을 털어내고, 임도 다운힐을 시작한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그렇게 내려와도 산 중턱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신나게 내리 쏘다보니, 어느덧 ‘채종원’이다. 자출사 회원들이 참가자들에게 물을 지원하고 있다. 고마운 마음으로 물을 한 병 다 마셔버리고, 채종원 오르막길로 접어든다. 산마루를 하나 넘자 본격적인 당림리 다운힐이 시작된다.
17킬로미터의 당림리 임도는 달려도 달려도 줄지 않는 느낌이다. 그만큼 지쳐서일까? 글쎄다. 내 몸이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고 힘이 넘쳐서 경사 급한 다운힐은 최대의 속도로 내리쏘고, 평지성 업힐 또는 다운힐 구간에서도 매우 빠른 속도로 돌진하다시피 페달링을 하는데,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산허리를 돌아가는지, ‘참 멀기도 하다.’는 생각과 함께,
“아, 이게 바로 춘천의 힘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왕년에 강원도의 산들을 수없이 쑤시고 다녔지만, 그것은 대부분 육중한 몸매에서 우러나오는 거대한 강원도의 힘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느껴지는 힘은 육중한 몸매가 지닌 강원도의 힘이 아니라, 아기자기하지만 깊게 패이고 끝없이 이어지는 그윽한 산세가 만들어낸 ‘춘천의 힘’인 것이다.
천길 낭떠리지를 깎아내어 만든 산허리 길이 무한히 돌고 도는 기분이다. 시지프스는 산꼭대기로 돌을 굴려 올렸지만, 우리는 산허리를 연자방아처럼 끝없이 돌고도는 형벌을 받은 느낌이랄까. 그렇게 산허리를 돌다가 지쳐갈 무렵, 간신히 당림초등학교로 빠지는 임도 3거리에 도착한다. 골백번 산세에 속고 나서 도착한 임도3거리인지라 반갑기 그지없다.
1시 48분, 힘차게 페달링을 하여 석파령 고갯마루에 도착한다. 시간도 기록해둘 겸해서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덕두원으로 다운힐한다. 생각보다 길이 좋지 않다. 마을에서 가깝고, 또 옛날부터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길이라 잘 닦여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막상 와보니 풀만 무성하고, 돌탱이와 자갈이 널려있는 거친 길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계곡길과 만나는 곳에서는 진행요원이 그곳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길 안내까지 하고 있다. ‘계곡 길이 얼마나 험하고 위험하면 진행요원까지 배치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 길이 이 정도이니, 계곡 길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거의 싸리재 넘어 목동리로 내려올 때의 길 정도는 ‘껌’일 것이고, 적어도 애기골 마지막 계곡길, 혹은 그보다 더 거친 길임이 분명할 것이다.
덕두원 도로에 도착해 신나게 달린다. 그런데 큰 도로와 합류하는 3거리에 도착하자, 갑자기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다. 그렇게 많이 지도 연구를 했는데,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면서, 3거리에서 좌회전해야 하는지, 우회전해야 하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는 것이다. 도로 한복판에서 멈추어 선 채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만, 아무도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길바닥에도, 도로변 난간 어디에도 랠리 표지기가 보이지를 않는다. ‘이런 젠장!’ 거의 3분 가까이 길에서 답답하게 시간을 흘려보내던 중, 느닷없이 머리에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아하, 다리를 건너야 했잖아.’
비로소, 길이 떠올라, 다리를 건너 다시 신나게 내달린다. 의암댐을 건너 자전거도로에 접어들어 막 올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형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조약돌님이다.
“어, 여기서 다시 만나네.”
“예.”
“오늘은 혼자네요.… 언제 출발했어요?”
“예, 어제는 일행과 다녔구요. 그 분이 오늘은 저 혼자 뛰라고 그러더군요. 그 분은 포기했어요. 그래서 형님이 만드신 상황표만 믿고 ‘3시쯤에 출발해도 충분하겠다’ 생각해서 아침 3시 10분에 춘성대교에서 출발했어요. 그런데 주위 사람들이, 출발이 너무 늦어서 컷오프 안에 못 들어간다고 워낙 걱정을 하는 바람에, 얼마나 달렸는지.… 한 백 명? 아니, 한 백 오십 명은 추월해서 온 것 같네요.”
“흐, 내가 당림리 입구에서 출발한 게 2시 40분인데, 3시 10분에 춘성대교를 출발해서 지금 도착했으니, 얼마나 달려왔을지 알고도 남겠네. 내가 추월한 사람들만 해도 족히 백 명은 될 텐데.…”
“아무것도 안 먹고 출발했다가, 얼마나 배가 고픈지.… 목동리 넘어 금강MTB 지원조를 만났는데, 그 때서야 밥 좀 달라고 해서 먹고 왔네요.”
우리는 둘이 나머지 막바지 구간을 신나게 달려서 2시 24분에 골인한다.
12시 14분에 북배산 정상을 출발해서 2시 24분에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으니, 2시간 10분 동안 마지막 힘을 쏟아낸 셈이다.

3시 넘어서 오라고 했는데도 일찍 송암스포츠타운에 도착해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집사람이 내 사진을 찍어주려고 막 달려온다.
“축하해요.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요?”
“막판에 신나게 달렸더니 좀 일찍 도착했네. 아, 저기 조약돌님 지금 막 들어오고 있네. 자, 우리 같이 사진이나 찍어 주시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먼저 도착해 있던 대전의 GO2바이크 회원이 인사를 한다.
“사내가요님, 상황판 잘 봤습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 받았습니다.”
“별 말씀을.…”
어색하게 인사를 받고, 조약돌님과 같이 집사람이 잡아놓은 그늘진 곳으로 가서 매트리스에 앉아 시원한 음료수와 맥주도 마시고, 수박도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약돌님은 일행을 만나기 위해 펜션으로 떠나고, 나와 집사람은 그곳에서 한참을 쉬다가, 맛집을 뒤져 유명하다는 닭갈비집을 찾아가 푸짐하게 저녁도 먹고, 나보다 더 잠을 못 잔 마누라에게 운전을 맡길 수가 없어서, 40킬로미터만 마누라가 운전하고, 나머지는 다 내가 운전해서 밤 10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5. 디저트

랠리 풀코스 참가 인원은 총 661명, 그 중 시간 내 완주자는 227명이다. 완주율은 34.5%, 환상적이었던 날씨를 감안하면 매우 낮은 완주율이다. 그리고 1등으로 골인한 참가자가 29시간 19분, 역대 가장 늦은 시간대이다. 30시간 이내에 완주한 사람도 겨우 6명밖에 없다. 29시간 19분에 두 명이, 29시간 34분에 3명이, 그리고 29시간 58분에 한 명이 들어와, TOTAL 6명, 15회 춘천 280랠리가 시간 잡아먹는 랠리였음을 확연하게 알 수 있게 하는 기록들이다.

춘천랠리는 내가 참가했던 다섯 번의 랠리 코스 가운데 가장 멋진 코스였다고 생각한다. 세 군데의 싱글 구간도 가장 훌륭한 코스였다. 대룡산 구간은 어차피 병목을 피할 수 없는 초입 구간이기 때문에 랠리 참가자들로 하여금 줄세우기를 해야 하는 구간이었다. 하지만 금병산 구간은 적당한 업힐 난이도와 신나는 다운힐 구간으로 이루어진 최상의 싱글 구간이었고, 북배산 구간은 랠리 참가자들의 도전 의욕을 일깨우는 동시에 체력적 한계를 시험할 수 있게 하는 멋진 난코스 구간이었다.
새벽의 출발지점을 제외하면 도로 구간도 거의 없어서 주말 교통사고의 위험이 거의 있을 수 없는 코스였다. 그리고 많은 임도들이 저마다의 풍경과 노면 상태를 지니고 있어서, 아름답고 힘있는 춘천 주변의 산악지대를 뽐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고, 비단길 같은 흙길부터 험난하기 짝이 없는 계곡 돌탱이길까지 아주 다양한 노면을 달리게 해 주었다.
거대하고 깊고 으슥한 계곡에서의 짜릿짜릿한 다운힐, 그리고 대룡산, 가리산, 연엽산, 구절산, 금병산, 봉화산, 계관산, 화악산, 가덕산, 몽덕산, 북배산을 잇는 수려한 임도 주변의 풍광들, 그리고 소양호와 북한강과 그것을 조화롭게 이어주는 다리의 아름다운 모습들, 그 모든 것이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춘천의 힘이었다.

비록 누가 누구를 지원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보다 더 잠도 못 자고, 나보다도 더 고생이 많았던 사랑하는 마누라에게 진한 고마움을 전한다. 내년에는 집사람 고향인 문경, 예천에서 랠리가 개최된다고 하니, 내년에도 마누라의 특화된 개인 지원을 받으면서 마치 호텔 생활하듯 남들이 부러워할 초호화판으로 문경 280랠리에 참가할 수 있겠구나. 흐흐흐^^

매년 힘들 때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신 온아MTB의 지원조님들, 그리고 위대하신 산적두목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음으로 양으로 위로하고 격려해주신 한자동 회원님들과 내 친구들, 너무너무 고맙고 사랑합니다.^^
그리고 쑥스럽게도 완주 축하 파티까지 열어준 바이키안 회원님들, 정말로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내년 문경에서 또 뵙겠습니다.^&^


2014년 7월 6일,
사내가요가 다섯 번째 280완주를 기록하다.

백종운 14-07-23 16:02
 
아름다운 랠리 후기 잘 봤습니다.
추억이 쌓인 춘천 임도, 가을 단풍 좋을때 한번 더 오세요^^
수자마 14-07-30 14:02
 
매번 후기읽고 불끈참가를 다짐하다가 막상 대회가열리면 제정신(?)으로 돌아온답니다.ㅎㅎ~~ 참..글구 1등으로 들어오신분은 26시간대고 수지자전거마을 아진님입니다~~  ^^ 암튼 사내가요님 대단하시고 생생한 멋진후기 잘 읽었습니다...~ ^^
싱싱이 14-07-31 15:03
 
와~~~ 정말 정확하고 생생하네요.
후기 읽는 동안 제가 다시 춘천280랠리를 뛰는 듯한 생생한 감을 받았네요.
참 대단한 분임에 틀림없네요. 축하드리고, 특출한 후기 즐감입니다...
무엇보다 부러운, 마눌님표 지원!!! 저도 언젠가는 해봤으면 합니다ㅎㅎㅎ
게리 15-05-21 19:56
 
대단하십니다!!
전반부/후반부 답사만 했었는데, 실감납니다.

이번 문경에서도 멋찌게 완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