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구간(출발부터 – 장호
중학교까지/53키로)
그렇게
새치기를 해서 스타트 라인을 넘는데, 앞 줄에 서 있던 몇몇 동호회원들이 “길따라 님 파이팅, 길따라 님 파이팅!” 하고 외쳐준다. 새벽 어둠이라 누군지 모르지만, 나도 한 주먹 불끈 쥐고 흔들며 “파이팅”을 맞장구 친다. 비가 내리는 도로를 질주하는데 안경에 빗물이 차며
시야를 가린다. 처음엔 코끝에 걸치고 고글 너머로 쳐다보며 가는데, 고글이
도무지 통제가 되지 않는다. 고글을 벗어 손에 들고 달린다. 어느
정도 달려 다리를 지나는데, “형님 여기 가슈?” 하면서
레오(서동각) 님이 지나간다. “어, 어서 가.” 그리고
그 후론 다시 못 봤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호회 네 분이 24시간
몇 분에 나란히 피니쉬 라인을 통과했다고 한다. 그렇게 진행하는데 바로 뒤에서 깜짝 놀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순간 위기를 직감한다. 아니나다를까, 어느 라이더가 비좁은 라이더들 사이로 휙 지나간다. 자칫 대여섯
명이 크게 다칠 수도 있었던 아찔한 순간이었다. 어라, 그런데
이 분 봐라. 미안하다는 사과의 말 한 마디 없이 누군가를 무심히 뒤쫓아간다. ‘헐, 참으로 괘씸한 개새끼로고.’
아무런 실속 없이 대형사고를 유발할 뻔한 분이 저렇게 태연하다니… 그런데 꽤 놀랐을 바로
뒤의 라이더, 처음엔 너무 놀라 경황이 없다가 서서히 정신을 차렸는지,
뭐라 욕설을 퍼붓더니 추월한 라이더를 추격하기 시작한다. 덩치가 큰 라이더로 앞선 라이더를
쫓아가 앞을 가로막은 채 라이딩을 한다. 웃지도 울지도 못할 안타까운 상황이다. 그 후 상황은 모르겠지만, 도로니 여유 있게 좌측으로 빠져 추월할
수 있는데, 왜 무모하게 타는지. 여기서 부상자가 발생했다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인가. 280은 항상 뒤에서 출발해 추격하는
맛으로 라이딩을 했는데, 처음으로 앞에 섰다가 못 볼 꼴 본 것이다.
그리고 도로에 약해 라이더들의 흐름에 방해가 되어 최대한 우측으로 붙어 타며, 다음 대회
때부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맨 뒤에서 경찰차의 호위를 받으며 다녀야겠다는 쓸데 없는 다짐까지 해본다. 그렇게
달리는데 뒤에서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부상 투혼을 살린,
아니 오히려 무모의 극치를 보여준 슈렉(김종환) 님이
악동 같은 목소리로 “길따라 님, 홧팅!” 하고 외치며 사라진다. 마찬가지로 슈렉 님도 며칠 후 뒤풀이에서나
얼굴을 보게 된다. 이제 신발 속에서 빗물이 찌걱거린다. 어차피
곱게 갈 형편은 아니니 무시하고 달리는데 첫 번째 야트막한 고개가 나온다. 여기서 가져온 만두도 하나
먹을 겸, 신발에서 빗물도 따라낼 겸 내린다. 그랬더니, 다른 많은 라이더들도 내려 쉰다. 한 번쯤 숨을 고를 때가 된 것이리라. 신발을 벗고 양말을 쥐어 짜니 빗물이 뚝뚝 떨어지지만 신발 창은 고정형이어서 특별한 방법이 없다. 결국 양말 한 번 바꿔 신지 못하고 끝까지 가게 되는데, 나중에
보니 말라는 있는데, 신발 벗을 용기는 없었다. 그렇게 쉬는데
한엽 친구가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물어본다. “그냥 만두도 먹고 바람막이도 벗으려고” 하니, 웃으며 지나간다. 이
친구도 나중에 완주하고 여관에서 보게 된다. 여기서 조승완 원장님과 조한표 친구를 만나 동행하게 된다. 도로를 지나 차단기가 설치된 임도를 지나 업힐을 시작한다. 이번에
처녀 출전인 한표 친구에게 “지금 단수가 어찌 되나?” 하고
물으니 “1에 3”이란다.
승완이 형님과 내가 이구동성으로 “어서 1에 1단으로 줄여” 하고 코치한다.
280에서 100키로까지는 워밍업이니 완주가 목표라면 다리에 부하가 걸리지 않을 정도로
달려야 중반 이후부터 승부를 볼 수 있다. 그렇게 1에 1단으로 가볍게 올라가는데 어느 순간, 뒤에 두 분이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급할 것 없으니 같이 갈 생각으로 기다리니 10분 정도 후에
두 분이 올라온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오래가려면 같이 가라고 했던가! 그렇게 오손도손 올라가는데, 어느 분이 “어, 펑크 나셨네요.” 한다. 헐, 펑크라니. 그런데
왜 그 말을 듣고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진행했는지. 그리고 다시 두 분과 거리가 벌어지고 등에 배낭을
짊어진 젊은 친구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달린다. 예전엔 젊은 친구들이 잘 보이지 않았는데, 강진 대회와 이번 대회엔 젊은 친구들이 많았고, 특히 이번 삼척엔
무지원 배낭 족들이 유난히 눈에 띠었다. 그렇게 배낭을 짊어지고도 뒤쳐지지 않고 잘들 오른다. 젊음이 부럽기도 하고 이런 건전한 도전에 뛰어든 그 열정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런데 어느 순간 한표 친구가 따라붙었다. ‘헐, 이
친구, 이번에 일내려고 하나!’ 그리고 다시 승완이 형님이
따라붙었다. 이제 내가 꼴찐가! 그런데 얕은 업힐에서 익숙한
뒷태가 보인다. 시나브로 김현식 선수다. 그리고 다운 주의하라는
안내판과 더불어 속도를 내기 힘든 급경사 시멘트 다운이 기다리고 있다. 다 내려가니 도로가 보이며 어느덧
첫 지원 포인트인 장호중학교 인근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승완이 형님이 다음에 주소를 찍어 지원 장소를
찾아 함께 이동하니, 지원조들이 반갑게 맞아준다(7시 30분).
여기서 라이트를 탈거하고 바지를
갈아입는다. 이미 빗물에 젖은 바지 때문에 허벅지가 쓸리고 있었는데 뽀송뽀송한 새 바지를 입으니 기분이
얼마나 상쾌한지. 여벌로 바지 한 벌과 양말 한 켤레를 챙기고 향이 님이 후원한 시원한 김칫국에 가볍게
밥을 말아먹는다. 원래도 아침밥은 많이 먹지 않는 편이기도 하거니와 이렇게 극한 운동을 할 때는 음식을
조금씩 자주 먹는 게 요령 아니겠는가! 여기서 오랜 만에 본 서울서 온 지장근 님이 타이어가 문제가
있다면서 지렁이 패치를 다급히 찾는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만두와 우유 등 먹을 걸 챙겨 들고 다시
출발한다(8시).